티스토리 뷰

반응형

1. 감독 및 배우

제목- 더플랫폼 (2019년)

감독- 가더 가츠테루 우루샤

배우- 이반 마사구에, 조리온 에궐레오, 안토니아 산후안, 에밀리오 부알레

 

2. 영화 줄거리 

고랭은 금연을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플랫폼에 들어오게 된다. 로랭의 첫 번째 룸메이트는 트리 마가시는 실수로 사람을 죽여 이 플랫폼에 들어오게 되었다. 호화로운 음식들은 플랫폼 0층에서부터 맨 마지막층인 333층까지 내려간다. 높은 층에 배정된 사람들은 호화롭게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아래층으로 식탁이 내려갈 수록, 음식은 바닥이 나버린다. 음식이 바닥나 버리자 아랫층 사람들의 인간성 또한 바닥나 버린다. 

 

3. 감상평

영화를 재생시키면 멈춤 없이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충격적인 소재로 특별한 공간 이동 없이 1시간 34분을 숨 막히게 보여준다. 이렇게 단순한 공간에서 이렇게 무시무시한 메세지를 숨막히게 전달해 주다니 놀랍다. 인간의 추악함과 탐욕, 그리고 악랄함을 식탁 위의 음식이라는 소재로 낱낱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한국 영화 중에 수평적인 열차 안에서 수직적인 계급이 보여주는 인간의 악랄함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외국 영화였다.

플랫폼이란 기차나 열차 따위가 승객들이 있는 승강장에 잠시 머무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과 마찬가지의 개념으로 맛있게 차려진 한상의 음식이 정해진 시간에 각 층수에 있는 사람들에게 잠시 머무르게 돼 된다. 음식 배식이 시작된 것이다. 위에 있는 사람이 욕심을 내지 않고 1인분씩만 먹으면 맨 아래층 사람 또한 1인분을 먹을 수 있는 구조의 배식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눈앞에 보이는 음식을 포기할 수 없다. 맨 꼭대기 사람은 잘 차려진 음식 앞에서 배가 터져라 먹고, 그 바로 아래층 사람은 살기 위해서 배가 터져라 먹는다. 그러고 나면 50층 정도 내려온 식탁 위에는 음식물쓰레기 쯤으로 보이는 음식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또한 고의적으로 아랫사람을 깔보기라도 하듯 음식을 더럽혀 놓기까지 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악랄함을 더욱더 보여주고 있다. 

48층의 주인공 고랭은 협동을 해서 아래층 사람과 음식을 나눠 먹자고 제안했지만, 플랫폼 파트너인 트리마가시는 고랭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한달에 한번 플랫폼 층수가 바뀌는날이 되었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트리마가시는 자신보다 젊고 힘이센 고랭을 잠들어 있는 동안 묶어 둔다. 자신의 층수가 높아지면 풀어줄 생각이었지만, 층수가 낮아질 경우 고랭은 자신과 음식을 놓고 경쟁해야할 경쟁자 였기 때문이다. 눈을 떳을때는 171층 아래 였다. 매번 식탁에서 내려오는 음식은 없었고, 트리마시는 생존을 위해 고랭의 살을 도래내 먹을 생각이었다. 함께 음식을 먹던 동료에서, 굶주림으로 인한 경쟁자로 둘의 관계가 변화된 것이다. 윗층의 배려가 없는한 아랫층 사람들은 동료의 살을 잘라먹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인간성에 희망을 둔 이 수직적인 구조의 부조리함을, 식탁이라는 소재를 통해 자세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플랫폼의 구조는 위층과 아래층 사람들과의 소통이 막혀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위층과 아래층 사람들 사이에는 불신으로 인해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전체 부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떄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영화 플랫폼이에서는 상위 층수의 사람들이 식탁위 음식 80%를 독식하는 모슴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있다. 상위층의 이득인 음식을 아랫층 사람을 위해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위층에게 주어진 이득을 최대한 누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탐욕적인 본능을 식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인 고랭은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낸 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고급 푸다 한 접시를 '새것인 상태'로 남겨서, 나중에 식탁이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을 때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었다. 항상 아무것도 안 남겨져 있던 식탁 위에 고급 푸딩이 새것인 상태로 올라간다면, 인간성을 조롱하던 이 시설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333층에서 식탁이 멈췄을 때, 그곳에는 어린 소녀가 굶주려 있었고, 주인공 고랭은 이 소녀에게 온전한 '새 푸팅'을 건네준다. 인간성의 회복을 표현한 것 같다. 소녀가 푸팅을 먹어치워 없어졌지만, 고랭은 아무것도 없는 식탁에 굶주림이 해소된 소녀를 최상위층으로 올려 보낸다. 음식보다 중요한 인간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인간성의 회복이란 이러한 것이 아닐까? 만약 소녀에게 푸딩을 주지 않고 온전한 푸딩을 최상위층으로 올려 보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시설은 절대 아이가 들어올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을 했다. 그러나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 있었고, 아이가 이 플랫폼이란 구조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이가 들어올 수 없다는 구조에, 정말 아이가 있었다. 인간성 실험 플랫폼 구조안에, 푸딩보다 아이를 올려 보낸 것은 인간성 회복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낸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소녀는 위로 올라가고 주인공 고랭은 어둠속으로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인간성 회복이라는 희망적 메세지를 위해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을 보면서, 인간성 회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반응형
반응형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